본문 바로가기
음악이야기

클래식 역사 -고전파 음악 시대배경과 활약한 작곡가

by 🥕👩🏻‍🎓 2020. 5. 26.

클래식 음악이 주류였던 시절은 세계적으로 다양한 변화가 있었던 시기입니다. 

이번글은 그런 변화의시대에 확립된 고전주의 음악의 과 활약한 작곡가의 추천 곡을 소개하겠습니다. 

 

 

고전주의 음악 시대배경

클래식 음악이 주류였던 1750~1820년경. 혁명의 시대.

1776년 미국 독립선언, 1789 프랑스 혁명. 그리고 18세기 후반부터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음악에 있어서도 이전 시대에 비해 큰 변화가 있던 시대라고합니다.

 

고전파 음악의 특징
  • 기악 장르의 발전

이탈리아 심포니아가 독일로

 

고전파 시대는 교향곡과 실내악 곡 (현약4중주 등) 등의 기악 장르가 발전했습니다. 

이 심포니아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서곡 등 오페라와 음악 관계가 없었기 때문에 분리하기 쉽고, 독립적으로 연주 할 수 있었습니다.

곧이어 이탈리아 심포니아는 독일에 수입되고 크게 발전했습니다.

 

비엔나에서 크게 발전

 

1770년 경부터 비엔나 교향곡이 큰 발전을 이루고 있습니다. 교향곡의 발전의 기반을 만든것이 '교향곡의 아버지'로 불리는 하이든. 하이든은 평생 100곡 이상의 교향곡을 만들었습니다.

그후, 천재 모차르트, 악성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등 쟁쟁한 음악가가 뒤를 따릅니다.

 

  • 음악가가 장인에서 예술가에게

바로크 음악 이전 음악가의 주요 임무는 교회 나 궁정이므로 의뢰를 받아 연주하는 것이 었습니다.
노래와 연주 자체도 그 자리에서 즐길만한 것으로 기록한다는 개념은별로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고전파 시대의 세상은 혁명의 시대. 파리와 런던 등의 대도시에서는 시민의 힘이 강해지고 시민층에 "음악을 즐긴다 '라는 개념이 탄생했습니다.
시민을 모아 연주회를 개최하거나 악보를 출판하고 판매하는 .... 과연이 시대 음원까지 판매하는 기술은 아니지만 지금의 뮤지션의 비즈니스 모델과 더 가까워진 것입니다.

 

또한 같은 고전파 시대를 살았던 두 천재 모차르트와 베토벤. 이 두 사람 사이에 14 살 차이가 있지만, 모차르트는 25 세까지 고용 음악가를 경험하고 온 반면 베토벤은 평생 한 번도 궁궐을 섬기는 수 없습니다.

"교회 나 궁정을위한 음악 '이 아니라'자신의 표현하고 싶은 음악 '을 만드는 ....
이 고전파 시대 후기부터 음악가는 고용 장인이 아닌 예술가로 인정 받고갑니다.


고전파 음악의 대표적인 작곡가와 유명한 곡
  • 하이든의 '런던'

하이든은 '교향곡의 아버지' 로 불리고 있는것 부터도 고전파 시대의 중요한 음악인것으로 알고있습니다.

 

♪ 근처에서도 평판은 노래 잘하는 아이

 

하이든은 1732년 당시 헝가리 로라우라는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이든은 음악가의 가정에서 태어난 건 아니지만 자동차 목수 일을 하던 아버지가 매우 음악을 좋아하고 하이든이 그 영향을 받은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하이든은 어릴 때부터 노래를 잘해서 동네에서 유명했습니다. 함부르크에 살고 있던 친척이 그 재능을 살려 음악 교육을 본격적으로 받기위해 데려갑니다.

 

♪ 젊은 시절의 고생

 

젊은 시절 하이든은 제법 고생 한 사람입니다. 다락방에서 살았고 교회와 귀족의 파티에서 연주, 교사 등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27세 궁정에 가기까지 가난한 생활이었던 갔습니다. 

 

♪ 오랜 고용 악장을 거쳐 런던에서는 무료로

그 후 수년에 걸쳐 궁정 악단의 악장을 맡아 수많은 교향곡을 작곡 할 수 있었습니다. 만년은 섬기던 궁정 악단이 없어 실업 한 것을 계기로 런던에서 콘서트를 했고, 그것이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하이든은 1791 ~ 92 년의 1 년간 런던에서 많은 연주회를 접대하고 거액을 손에 넣은 것 같습니다.

하이든이 비엔나에서 런던으로 떠날 때 모차르트가 배웅하러 오거나, 베토벤에 관해서는 사제 관계였던 것도 있습니다. 앞둔 천재 음악가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 인물이기도합니다.

이 곡은 큰 성공을 거둔 런던에서 작곡 된 하이든의 대표작이라고도 할 수있는 곡입니다.

 

 


  • 모차르트 (교향곡40번)

장르를 불문하고 신동, 천재라는 음악가에서 먼저 이름이 떠오르는건 모차라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 아버지와 연주 여행의 나날

1756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났습니다. 궁정 악사를 하고 있던 아버지는 모차르트의 음악적 재능을 재빨리 간파합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재능을 세상에 퍼뜨리기위해 어린 모차르트를 데리고 연주 여행을 반복합니다. 모차르트의 연주는 곳곳에서 큰 호평을 받았다고 합니다.

 

♪ 이탈리에서 취업하지못하고..

모차르트가 태어난 잘츠부르크는 역사가 있는 도시지만 결국 시골.

아버지는 모차르트를 더 큰 궁정 악단에 넣으려고 생각해 이탈리아로 유학을 겸한 여행을 떠납니다.

하이든도 그랬지만 이 시대 시골에서는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성공하기 어려웠습니다.

모차르트는 이탈리아에서 오페라를 배우는 등 음악의 폭을 넓히는 데는 성공했지만 결국 취업은 이루어지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잠시 고향에서 고용 음악가의 삶을 살았지만 어느날 대주교와 큰 싸움을 하고 악단에서 해고 당합니다.

 

♪ 25세에 프리랜서 음악가

고향 궁정 악단에 해고당한 모차르트는 지금 말로 프리랜서를 선언합니다. 이 당시 하이든 도 고용인 이었기 때문에 모차르트가 프리 뮤지션의 선구적 존재이네요. 모차르는 비엔나에서 예약제 연주회를 엽니다. 장소를 결정하고 예약을 하고, 입장료를 팔아 콘서트를 연다..

지금은 당연한 시스템이지만 당시의 연주회는 귀족의 후원으로 이루어지는게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매우 참신한 일이였습니다. 또한 이탈리아에서 배운 오페라로 만들어 파는 수법으로도 수익을 얻었습니다.

 

♪ 방탕으로 보낸 시간

비엔나 에서 큰돈을 얻고 그는 방탕으로 유명하며 점점 빚이 부풀어 갔습니다. 전형적인 파멸 형 천재의 길을 걷게되는 모차르트는 마지막 레퀴엠 이라는 곡을 만들고 수수께끼의 죽음에 이르렀습니다. 35세의 젊은 나이였습니다.

 


  • 베토벤

고전주의 음악의 완성. 그리고 낭만주의의 개막을 후대 음악가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준 베토벤. 바로 악성의 이름에 걸맞는 음악가입니다.

♪ 부모와 자식 3대 음악가족

베토벤은 1770년 독일 본에서 태어났습니다. 베토벤의 가족은 음악 가족. 할아버지는 궁정 가수 궁정 악장 까지 맡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 역시 궁정 가수였습니다. 할아버지의 죽음 이후 아버지는 악단에서 냉대당하고 알콜 중독까지 걸려 생활이 좋지 않았습니다.

베토벤은 어릴때 부터 고생을 했습니다. 알콜 중독 아버지는 아들에게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 베토벤에 스파르타 교육을 실시합니다.

혹독한 과정은 힘들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재능이 빛을 바랬습니다.

 

♪ 하이든과 모차르트와 만남

베토벤은 7세에 콘서트데뷔, 13세에 궁정악단에서 월급을 받고, 14세 무렵에는 음악 교사도 해내는 등 알콜 중독 아버지대신 가족의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16세가 된 베토벤은 지인들에게 여비를 마련해달라고 부탁하고 비엔나에 음악 공부를 하러 떠납니다.

그래서 모차르트와 한번 만난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모차르트는 베토벤보다 14살 연상이므로 모차르트가 당시 30세. 프리랜서 음악가로서 큰 성공을 누리고있던 모차르트는 어린 시절 베토벤의 피아노를 듣고 재능을 인정했다고 합니다.

모처럼 비엔나에 음악 공부를 하러 온 베터벤 이었지만 어머니의 위독 소식에 본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본에 돌아가도 베토벤은 음악가로 순조롭게 성장을 계속했습니다. 하이든이 런던에서 돌아 오는 길에 본에 들를때 베토벤이 쓴 악보를 보고 재능을 알아보고 제자로 초대합니다. 이를 계기로 베토벤은 다시 비엔나로 가게됩니다.

 

♪ 피아니스트로 성공 그리고 난청

베토벤이 비엔나에서 처음으로 명성을 얻은것은 피아니스트였습니다. 피아니스트로 스타가 되고, 교향곡의 작곡도 담당하기 시작했을 무려, 베토벤의 신체에 이변이 일어납니다. 

바로 난청.

귀가 안들리는건 음악가로서 사망진단과도 같은 치명적 질병입니다. 이때 30세를 넘었던 베토벤은 죽을듯 괴로워하며 음악가로서 의 고민을 했지만 작곡가로서 살아갈 것으로 결심합니다.

 

곧이어 혁신적인 교향곡을 발표하고 악성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는 활약을 이어갔습니다. 베토벤은 고집도 세고 사생활에서는 괴짜로 알려져 있지만 음악에 대한 자세는 금욕적이고 열정적이였습니다. 많은 후배 뮤지션으로부터 존경을 받고있었던것 같습니다. 베토벤의 장례식은 그야말로 성대하고 크게 이루었다고 합니다.

 

♪ 베토벤의 대표 교향곡

 

베토벤 교향곡 9번 '운명' 은 정말 베토벤 하면 빠질수 없는 유명한 곡입니다.

 

댓글